아무것도 안 한 날의 저녁
오늘은 계획했던 일을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. 해야 할 목록을 열어 놓고도 다른 창만 번갈아 보다가 하루가 갔어요. 저녁이 되니 아무것도 안 한 사람이라는 판정이 머릿속에 먼저 내려졌습니다.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밥을 먹고, 연락 하나에 답하고, 미뤄 둔 설거지도 했습니다. 목록에 없던 일은 성과로 세지 않는 습관이 저를 자주 무시하는 것 같아요. 누군가의 기준으로 보면 작은 일일지 몰라도 오늘의 저는 그만큼 움직였습니다. 내일은 할 일을 세 개만 적고 시작하려고 합니다. 다 못 해도 하루 전체를 실패로 부르지는 않기로요. 매일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조금 멀어지는 연습을 하고 싶습니다. 휴대폰을 내려놓고 세수를 한 것도, 쓰레기를 버린 것도 분명 오늘의 저를 도운 일이었습니다. 이런 기록을 남기는 이유는 잘한 일을 과장하려는 게 아니라,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문장을 조금 더 정확하게 고치고 싶어서입니다.